Narration - 3

Ordinary 2013. 6. 2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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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났다. 이짓을 언제 시작했는지.

제대할 무렵이었는지, 제대후 였는지 정확하지 않았다.

블로그의 첫글을 확인해보니 2002년 여름이었다. 2002년.

2002년. 모두들 그 해를 떠올리면 기분좋은 상상에 빠지던 그때.

그 때 시작한 짓이 10주년도 넘었다.

깨작질로 시작한 것이 어느 순간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고... 

점점 올린 사진이 많아졌고... 호스팅으론 감당이 안돼 티스토리로 옮겼고..

어느 순간부터, 반 방치 수준으로 돌보지 않게 되었다.

사실, 유행따라 시작했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유지"되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느냐... 그것도 잘 모르겠다.

그저, 감정의 휴지통 역할은 충실히 해온듯하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유지되어 갈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꾸준히 쌓여만 가겠지.

뭔가 변화를 주고 싶어도 잘 떠오르질 않는다.

습관처럼, 적당히 치워버리고, 지우고, 버리고 하겠지만, 물리적 공간과는 참 다른 성질의 공간이라. 

방안의 휴지통은 비워져야 하지만 이 휴지통은 비운다는 건 곧 끝이니. 

 

앞으로의 10년 혹은 그 이상을 위해, 지난 10년을 곰곰히 생각해본다.  
(나름대로) 한때 "닷컴" 이었던 내 웹페이지. 
 

Narration - 2

Ordinary 2013. 4. 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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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의 외유를 마치고 귀국하기 한달 전쯤... 아마 이맘때다.

지금과 같은 거센 바람이 불었었다. 머물고 있었던 지구 반대편에도.  

걱정은 현실이 되고, 희망은 절반정도는 절망이 되어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나머지 절망을 어떻게든 회복시키려 애쓰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번주같은 거센 바람부는 날들이 계속됐다. James river, 그 강변에 섰을때...

숨마저 멎게 만드는 맞바람을 맞고 순간 아찔했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구나... 

(그리고 다음날, 근처에 토네이도가 왔었다는 기사를 봤다.) 

운좋게도 나는 무사히 남은 날들을 채우고 돌아왔다. 거센 바람을 보내고 나아질 줄 알았지만 

돌아온 내 자리는 그대로였다. 또 다시 회복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현재. 

비슷한 현상이 반복되는 것 같아 불안하다. 제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일도 사랑도. 그때처럼. 

 

Narration

Ordinary 2013. 3. 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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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진 혹은 그림 없이 뭔가 적는다는게 참 어색하기까지 하다. 무슨 일성록도 아니고..

유난히?도 추웠던, 밤잠 오지않던 겨울을 보내고 봄이다, 하지만 아직 추운 봄이다.

그러나 마치 겨우내 밀린 잠이라도 자려는 듯, 졸음이 몰아친다..

가끔씩, 꿈을 꾸게되고 아침이면 뭘 꿨는지 잊을세라 애써 기억을 붙잡는다.

꿈조차 꾸지않는 내가 드물게라도 꿈을 꾸다니, 아직 원상태로 회복되진 않은 모양이다.


간밤에 꾸는 꿈이라니. 차라리 타로를 믿지.
 

주민등록증.

Ordinary 2012. 4. 2.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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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10년넘어, 굳이 몇년째인지 세고싶지 않다
재작년 이사하고
타국에서 일년, 그리고 귀국후...
내 빈자리는 일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대로라는 사실에 혼란스러웠고
혼란을 가라앉히자마자

또 이사...

어느새 내 주민등록증 뒷면 주소란은 꽉차버렸다.
주소지를 서울로 처음 옮기고부터 계속...계속....
이동네에서 옆동네로...옆옆동네로 옮긴것 뿐인데...

왠지 서글퍼진다.
여권이라면, 페이지 가득 들어있는 출입국 도장이 참 멋질텐데...

something.

Ordinary 2010. 3. 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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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10년째,

그동안 고시원은 전전하지 않았단 거에 감사한다.
좁은 원룸에서 시작해
반지하, 일층, 이층... 이집 저집으로 이사하면서
필요없는 물건 버리고 집으로 내려보내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지녔던건 책들과 내 꿈.
꿈을 꾸면서도 이루면서도 수백번 의심과 고민을 멈출수없었고
아직도 진행중.......
하지만
이런 고민조차도 사치라는 걸 깨닫는다.



----- 감성다큐 '미지수' 스페셜, "이사"  를 보다가..

移徙

Ordinary 2010. 3. 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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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작스레 연초에 이사가 결정되고 나서,
학기초에 이사날짜가 잡혀버렸다..
2년에 한번씩 "이사"를 하다가 꽤 오랫동안
그러질 않아서인지 결국 정신줄 놓아버렸다..@_@
최악의 이사...

98년 신림5동 -> 99년 사당1동 -> 00년 사당1동 ->
02년 남현동   -> 04년 봉천11동-> 05-06년 기숙사 ->
07년-09년 인헌동 -> 10년~ 청룡동

생각해보니 그동안 집값은 오르고 형편은 나아지지 않아
점점 집상태가 안좋은 곳으로 이동하게 된듯..
언제쯤 이런 짓 그만두게 되려나;;;

잠시 짐정리 멈추고 숨돌리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할 일과도 챙길겸
연구실에 나와서 깨작깨작...

El Camino.

Ordinary 2009. 7. 1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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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없이 포스팅하는 거 얼마만인가...

작년초에 봤던 다큐, "길위에서 길을 묻다."
지금은 뭐...음....좀 그렇게 됐지만 그때만해도
나름 "middle name"생긴지 얼마 안된터.

프로방스 어딘가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가는 길, "El camino de Santiago".
중세부터 이어져온 이 순례길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의 배경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거기다 TV에도 나왔으니 이제 길위에는 사람들로 넘쳐나지 않을까. 아무튼,

08년 초, 지난 한해동안의 고민과 망설음을 끝내고 지금의 이길로 들어섰을때,
우연히 알게됐다. 길 위에서 길을 묻는 건 정말 나도 하고싶단 말이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 길은 이어졌지만, 잊지 않고 있다.

언젠가, 이길의 끝에 혹은 길의 갈림 앞에 다가왔을때
I WILL be on the El Camino. And I ask myself.
이제껏 걸어온 길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갈 길에 대해서. 道.



Annual Trajectory.

Ordinary 2008. 9. 1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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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여름을 보내고 맞이했던 2007년.
그리고 올해.
아홉수에 개인적인 갈등으로 고민했던 시기,
그해 가을을 어떻게 보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찍어왔던 사진속에 남아있던가? 아니면 어디인가.
점점 더 기억은 회상하기 어려워진다. 기억하고 싶든 하기싫든.

필름베이스에 묻혀있는 은염입자는 그 순간의 빛만을 담아낼뿐이다.
하지만 그 빛은 인간의 뇌에 전달되어 자극을 주고 기억을 재생시킨다.
그 순간에 듣던 음악, 느끼던 감정...까지 뒤섞여 머리를 흔든다.
시각과 음향 그리고 이야기.
사람들은 기억 혹은 추억을 머릿속에 간직하고자 사진을 찎고 음악을 연주하고
글을 써왔는지도 모른다.

..............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초가을까지 해뜬날없이 비가 내렸었고, 그해 겨울, 그리고 올해 봄학기까지
불면에 시달렸다. 정확히 말하면 취침과 기상이 불규칙해지면서, 늦게자고 늦게...ㅡㅡ;
그리고 그 개인적인 갈등외엔 특별한게 없/었/다. 외적으로 휘몰아치는 일이 없었던
그저그런 무료한 계절이었구나.

St. Richard

Ordinary 2007. 12. 15. 01:41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카르도(4월 3일)
성인명 리카르도(Richard)
축일 4월 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치체스터(Chichester)
활동연도 1197-1253년
같은이름 리까르도, 리까르두스, 리차드, 리처드, 리카르두스

  잉글랜드(England)의 위치(Wych)에서 태어난 성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는 옥스퍼드를 비롯하여 파리(Paris)와 볼로냐(Bologna)에서 수학했고, 1235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사무국장이 되었으나, 당시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인 애빙던(Abingdon)의 성 에드문두스 리치(Edmundus Rich, 11월 16일)를 만나 그를 돕기 위해 즉시 사무국장의 직책을 사임하였다.

  그 후 1240년 성 에드문두스 대주교가 프랑스의 퐁티니로 망명했을 때 그를 수행한 성 리카르두스는 에드문두스 성인이 사망한 후 오를레앙(Orleans)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은거하며 신학을 연구하고 서품을 받은 후 영국으로 돌아왔다. 1244년 성 리카르두스는 치체스터 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그의 업적은 교구의 완전한 개혁으로 교회 내의 친족 등용과 성직매매를 적극 반대하고 금지시킨 것이다.

참고자료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4권 - '리처드, 치체스터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1997년, 2318쪽.

Breaking point

Ordinary 2006. 12. 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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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기로에 서고 말았다.
예감은 정확한 결과를 알려주었던 거였다.
의외는 결코 없다.

짜증이 밀려왔다.
이런 일도 생길 수가 있단 말인가...
결국 내 일생에 one shot one kill은
절대없었던 거다.
존내 맞다가 회심의 일격으로 기사회생
하듯이....
여기저기 찔러보고 튕겨나가다가
제대로 찔러서 꽂았어야 했다...

Da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