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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꺼내보니, 가을이었다.
숨가쁘게 지냈었나 생각해보니
그런것 같진 않았고...
그냥 그렇게, 살아왔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의 무게가 쌓여
몸을 돌려 내 궤적조차 돌아볼 여유가 없었나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가을엔 뭘했었는지.


13년 10월,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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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가 본다.
한쪽에는 권율장군이 직접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고,
집터에는 외국인이 지은 저택이 들어섰다.
3.1운동이 해외로 알려졌고, 일가족은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추방된다.
그리고, 건물 한쪽에 새겨져있는 DILKUSHA 1923 은 한참동안 그 사연을 숨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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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되고서야, 그 후손이 찾아와 모든 사실이 밝혀졌다.
그 사이,  대저택에는  집없는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건물의 원형도 좀 변했다.
90년 넘은 이곳은 이제 붕괴위험에 처해있고, 문화유산으로서 보존되어야 하나,
(촬영당시까진) 아직 보수공사가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 

거주민들에겐 퇴거명령이 내려졌지만, 그들에겐 이곳이 이상향, "딜쿠샤"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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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에서 시작된, 성곽과 그 흔적을 따라 걸었던 길
그리고 곳곳에 남아있는 역사적인 장소들에 대한 기록, A Modern Stroll is over.


13년 10월 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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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을 지나 오르막길을 걷는다.
재개발 지역이 펼쳐져있다..
사직터널위를 넘으면, 저 멀리 은행나무가 보인다.

종착지에 거의 닿았다.
그토록 바라던 "이상향"... ...


13년 10월, 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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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품고 있는 곳을 벗어나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재개발지역과 다시 나타난 성곽이 마주하고 있다..
성곽을 따라 나있는 길을 따라가면 끄트머리에,

오래된듯 오래되지않아 보이는,
도드라보이지 않으면서 돋보이는 집한채가 보인다.

담쟁이 덩쿨이 벽 한쪽을 뒤덮었고
뒤덮이고 나서 뚫어놓기라도 한듯 창문이 "서양식"으로 나있다.

더이상의 수사는 하지 않겠다. 떠오르지도 않는다.
재개발지역안에 있어 철거대상이었다가,
부랴부랴 서울시측에서 사들였다 한다..


13년 10월, 홍난파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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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흔적.

한명, 한명... 그렇게 사라져갔다..

헤게모니는 더욱 견고해졌다.. 그리고 현재까지.


13년 10월, 경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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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의 사무공간.

해방이후 - 정부수립까지의 기간동안 임정요인들이 모이던 곳.

그들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


13년 10월, 경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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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앞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걸어올라가고 큰길을 건너면,
병원 건물들에 둘러쌓인 장소가 있다.

어쩌다가, 이 장소가 병원의 일부로 쓰이게 됐으며,
왜 이제서야 문화재로서 대접을 받는가.

슬프면서, 이해하기 힘든 우리 현대사의 한 단면이다.

13년 10월, 경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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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동길로 들어서서, 익숙한 그 미술관 앞을 지나기전,
유명한 노랫말에 나오는 교회당앞에 섰다.
그시절의 한국개신교회 예배당은 지금에 비하면 참으로 소박했구나.
하지만 교회앞에 늘어선 차들은 참으로 화려하구나.

2.
교회당을 담으려니 묵직한 건물이 자꾸 들어온다.
위세등등하던 예전의 공사관 건물처럼 화려하고 웅장하진 않지만
군사요새와도같은 불곰국 대사관이다.
음험한 분위기하며, 설치된 돔과 안테나들은 과연 무엇이냐.
덕수궁이 경운궁이었던 시절의 상황은 21세기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13년 10월,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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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에서부터 시작된 발길은 정동으로 향했다.

서소문로를 건너고, 오르막을 오르자 곧 배재학당 동관이 보인다.


근대 유적이든 아니든, 고궁을 제외하면

많은 장소들이 고층 빌딩숲안에 갇혀있다.

"도심"이라는 숲속, 그루터기만 남은 가장 오래된 나무처럼.


무엇인가, "시간"이라는 자양분으로 자라는 나무들이 베어진듯.

그리고 주변엔.....



13년 10월,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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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눈앞에 펼쳐진 야경을 보며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그렸습니다.
나의 앞날을,
때론 누군가와. 그 누군가와 함께할 날들을.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그 기억들은  산산히 부서지고 흩어집니다.

검은 밤, 이 도시가 만드는 빛의 그림이라면,
아마도 수많은 그 편린들의 반짝임일 것입니다.

다시 날이 밝아올때까지, 남아있는 한 점의 빛이 있다면, 그것은...


13년 9월, 여의도 한강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