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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의 시작,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고
어떤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고개를 돌리면 바로 결에,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You are not alone... You would be.


14년 2월, 공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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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표면은 얼어버렸다.
마치 저편의 시공간은 멈춰 버린듯.
 
선명하게 보이던 그림은 흐려졌다..
그대로 흐려져 없어질듯한데
시간이 멈춘듯, 흐려진채 남아있다.

지워 없애려고 하지만, 그냥 그렇게 희뿌옇게
그려지는 기억처럼.

하지만 알고 있다. 봄이 되면
얼음은 녹고, 고여있던 물은 공기속으로 사라지고...
비춰졌던, 다른 세상을 보는 듯 했던 반영도,
다른세상을 살았던 것 같았던 기억들도
사라진다는 것을.


14년 1월, 중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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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안에, 또 다른 상이 있다.
빛이 반사되어 생기는 장면이 포착된 순간이다.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기는 영상은
늘 중첩된 장면을 만든다.
이건 유리창안에서 밖을 촬영할때도 마찬가지다.
내부의 모습이 반영으로 남는다.

문제는 둘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창이다.
어느쪽에서 보든, 한쪽의 모습이 보이고 만다. 

필터를 쓰면, 몸을 숙이고 기울이고 하면... 어떻게든
반영은 지워진다. 오롯이 한쪽너머만 잘... 나오게된다.

하지만,
필터는 항상 잊는다. 몸을 움직이면 원하는 구도가 망가진다.

그저... 비춰지는, 그 반영이 창 저편에
불편하지않게.. 자연스럽게 들어가도록... 그렇게 해야한다.
그래서 어렵다. 시작부터...... 참 어렵다.   


14년 1월, 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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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기고 있던- 아마도 한방향이었을꺼라 생각되는- 끈이 장력을 잃은 시점이었다.
내 기나긴 터널은 그 끝이 있는 듯, 먼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여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다.

곰같았던 상대방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원인은
감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그 때"의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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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통제된 도로 한복판에 서 본다.
그땐 날씨좋은 적이 그렇게 드물었고,
탁 트인 도로 한복판에 나와본적도 없었는데,
이 가을은 참 좋네. 좋았네.


13년 10월, 시청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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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가 본다.
한쪽에는 권율장군이 직접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고,
집터에는 외국인이 지은 저택이 들어섰다.
3.1운동이 해외로 알려졌고, 일가족은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추방된다.
그리고, 건물 한쪽에 새겨져있는 DILKUSHA 1923 은 한참동안 그 사연을 숨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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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되고서야, 그 후손이 찾아와 모든 사실이 밝혀졌다.
그 사이,  대저택에는  집없는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건물의 원형도 좀 변했다.
90년 넘은 이곳은 이제 붕괴위험에 처해있고, 문화유산으로서 보존되어야 하나,
(촬영당시까진) 아직 보수공사가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 

거주민들에겐 퇴거명령이 내려졌지만, 그들에겐 이곳이 이상향, "딜쿠샤"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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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에서 시작된, 성곽과 그 흔적을 따라 걸었던 길
그리고 곳곳에 남아있는 역사적인 장소들에 대한 기록, A Modern Stroll is over.


13년 10월 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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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을 지나 오르막길을 걷는다.
재개발 지역이 펼쳐져있다..
사직터널위를 넘으면, 저 멀리 은행나무가 보인다.

종착지에 거의 닿았다.
그토록 바라던 "이상향"... ...


13년 10월, 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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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품고 있는 곳을 벗어나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재개발지역과 다시 나타난 성곽이 마주하고 있다..
성곽을 따라 나있는 길을 따라가면 끄트머리에,

오래된듯 오래되지않아 보이는,
도드라보이지 않으면서 돋보이는 집한채가 보인다.

담쟁이 덩쿨이 벽 한쪽을 뒤덮었고
뒤덮이고 나서 뚫어놓기라도 한듯 창문이 "서양식"으로 나있다.

더이상의 수사는 하지 않겠다. 떠오르지도 않는다.
재개발지역안에 있어 철거대상이었다가,
부랴부랴 서울시측에서 사들였다 한다..


13년 10월, 홍난파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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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동길로 들어서서, 익숙한 그 미술관 앞을 지나기전,
유명한 노랫말에 나오는 교회당앞에 섰다.
그시절의 한국개신교회 예배당은 지금에 비하면 참으로 소박했구나.
하지만 교회앞에 늘어선 차들은 참으로 화려하구나.

2.
교회당을 담으려니 묵직한 건물이 자꾸 들어온다.
위세등등하던 예전의 공사관 건물처럼 화려하고 웅장하진 않지만
군사요새와도같은 불곰국 대사관이다.
음험한 분위기하며, 설치된 돔과 안테나들은 과연 무엇이냐.
덕수궁이 경운궁이었던 시절의 상황은 21세기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13년 10월,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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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에서부터 시작된 발길은 정동으로 향했다.

서소문로를 건너고, 오르막을 오르자 곧 배재학당 동관이 보인다.


근대 유적이든 아니든, 고궁을 제외하면

많은 장소들이 고층 빌딩숲안에 갇혀있다.

"도심"이라는 숲속, 그루터기만 남은 가장 오래된 나무처럼.


무엇인가, "시간"이라는 자양분으로 자라는 나무들이 베어진듯.

그리고 주변엔.....



13년 10월,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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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눈앞에 펼쳐진 야경을 보며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그렸습니다.
나의 앞날을,
때론 누군가와. 그 누군가와 함께할 날들을.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그 기억들은  산산히 부서지고 흩어집니다.

검은 밤, 이 도시가 만드는 빛의 그림이라면,
아마도 수많은 그 편린들의 반짝임일 것입니다.

다시 날이 밝아올때까지, 남아있는 한 점의 빛이 있다면, 그것은...


13년 9월, 여의도 한강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