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www.ted.com/talks/lang/kor/stephen_wolfram_computing_a_theory_of_everything.html

Mathmatica의 아버지, 유명한 천재. 수학자,물리학자,기업가(Wolfram Research).

머지않아 구글을 대신하게 될지, 그의 이론이 패러다임을 바꾸게 될지....흠...ㅇㅅㅇa.


꼬꼬마시절 학부 전기역학 교수님이 즐겨쓰시고...결국 숙제를 위해 써야만 했던 Mathmatica...
간단히 수식과 숫자만 바꾸면 되는 숙제였지만 이후 굴다리에서 구해가지고 연습해보기까지 헀다..
처음 써본 그떄의 느낌이란;;;
그떈 정말이지 이 s/w로 복잡한 수식계산까지 다 되는 줄 알았다...


.

http://media.daum.net/digital/view.html?cateid=1006&newsid=20090525142105821&cp=


"그래서야 SW기업 밥먹고 살겠습니까?"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
.
.
요즘은 집안 어르신들과 정치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듯.
정치성향이 나와 완전히 다르신 분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나까지 X갱이 취급을 받게 되고 특히나 이번 일에 관해서
대화를 했다간 내가 뚜껑열리게 될까봐
일부러 시선을 피하거나 화제가 쏙 들어갈 수 있는 한마디 던져드리고 만다.
.
다들 배우신 분들인데 도무지, 상식이 통하질 않네...
.
  이건 그동안 방영되었던 리얼리티 쇼의 최종회정도 밖엔 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까지 나오는 방송을 보면서, 외신들은 어떤 기사를 내보낼지 사뭇 궁금해졌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야 했는가.
-----------------------------------------------------------------------------------------------


美NASA에 비쳐진 이소연-'우주인' 아닌 '참가자'(?)

노컷뉴스 | 기사입력 2008.04.09 06:06

[워싱턴=CBS 박종률 특파원 nowhere@cbs.co.kr]

이소연씨(30)를 태운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호가 성공리에 발사되면서 우주를 향한 '한국의 꿈'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세계 36번째의 우주인 배출국이라는 위상과 함께 유인 우주개발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자 '세계 최연소 여성 우주인'...
그렇다면 과연 美 항공우주국(NASA)은 이소연씨의 위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감격스러워 하는' 한국민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이씨를 '우주인'으로 명명하는 데 주저함이 없지만 NASA측은 이씨를 '우주비행(우주여행) 참가자'로 명시하고 있다. NASA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물론 국제우주정거장 관련 일일소식을 다루는 NASA의 ISS 데일리 리포트에서도 어김없이 이소연씨는 '우주비행 참가자'(SFP-spaceflight participant)로 명기돼 있다. 
  "South Korean 'Spaceflight Participant' So-yeon Yi,will launch April 8 on a Soyuz spacecraft from Kazakhstan". 일반적으로 미국이나 러시아의 우주인 분류는 선장(commander)과 파일럿,비행 엔지니어등으로 구분되며,이씨와 같은 경우는 정식 우주임무에는 참여하지 않는 우주인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NASA측은 이소연씨의 소유즈호 탑승은 한국과 러시아 우주연방청의 상업계약(a commercial agreement)에 따른 차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So-yeon Yi will launch to the International Space Station on a Soyuz ~ return on a Soyuz spacecraft with the Expedition 16 crew under 'a commercial agreement' with the Russian Federal Space Agency".
실제로 지난 2006년 12월 7일 당시 과학기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러시아 연방우주청에서 한국 우주인의 훈련과 탑승에 대해 정식계약을 체결했었다. NASA는 이와 함께 이소연씨의 우주임무와 관련해 이번 탐사과정에서 빛의 노출정도에 따른 승무원들의 취침과 기상패턴등을 체크하는 실험,즉 'SLEEP'(Sleep-Wake Actigraphy & Light Exposure during Spaceflight)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소연씨를 태운 소유즈호의 발사 장면과 비행중인 실내 모습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생중계했다.
  앞으로 NASA는 이씨가 오는 19일 미국의 여성우주인 페기 윗슨, 러시아 우주인 유리 말렌첸코와 함께 카자흐스탄 초원지대로 귀환할 때까지 주요 장면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할 예정이다. 특히 오는 10일 소유즈의 도킹장면과 국제우주정거장 환영식,지구궤도 진입과 귀환등을 인터넷 사이트(http://www.nasa.gov/multimedia/nasatv/MM_NTV_Breaking.html)를 통해 방영할 계획이다.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www.nocut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2년 대선때....
그때부터 이공계의 위기가 불거졌고...
후보들은 각자의 소신을 밝혔었는데....
대통령으로 당선된 당시 후보의 입에서...EDPS를 어쨌대나 뭐랬대나...
그러면서 대단히 신경써줄 것처럼 해놓고서는
실제로 내놓은 정책은 "숙식제공"의 술집광고나 마찬가지인 짓거리...

이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은데...


[단상]굴욕감-한국에 들어온 외국계 연구소

서울대는 관악산의 최고 대학

많은 사람들이 이공계 교육의 위기를 얘기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공계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다. 이건 아주 간단명료한 문제다. 살고 싶으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놔두면 된다.

나는 1991년 '서울공대 백서'를 발간했다. '서울대학은 국내 최고의 대학도 아니고, 세계 400위 안에도 못 드는 관악산의 최고대학'이라는 게 백서의 핵심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울대학은 지금도 관악산의 최고 대학일 뿐이다.

2002년 대선 때 서울대 폐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관악산 골짜기의 골목대장 밖에 안 되는 대학을 없애서 무얼 어쩌겠다는 것인가? 나는 '서울공대 백서'와 1992년에 펴낸 'W 이론을 만들자'에서 '오늘날 우리 공학교육의 위기는 5년 내지 10년 후 국가 전체의 위기로 냉큼 대두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IMF가 터지자 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족집게 같이 예견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건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내다볼 수 있는 일이었다.

이공계 교육이 왜 국가위기를 진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바퀴는 두 개다. 하나는 국가 경쟁력이고 하나는 가계부 작성이다. 돈을 잘 벌어야 하고, 번 돈을 잘 써야 하는 이치다. IMF는 벌이는 없고 가계부 작성도 엉망이었기 때문에 온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가계부 작성을 투명하게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엉망이었던 가계부 정리는 대충 끝났다. 구멍난 곳을 메우는 데 150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벌이를 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 'W 이론'에서 나는 세계 1등 기술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에서의 경쟁은 고스톱 판과 포커 판의 게임처럼 1등이 모든 것을 가져간다. 2등이나 3등은 가산만 탕진할 뿐이다.

당시에는 "도대체 무슨 얘기냐"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지만, 이제 이 얘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예전에는 인구 1억 명이면 내수시장만으로 국가를 지탱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요새는 인구가 문제가 아니다. WTO 등 글로벌 네트워킹 때문에 인구가 10억 명이 넘어도 기술이 없으면 굶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이외에 팔아먹을 것이 없다.

제주도를 천혜의 관광지라고 하지만 1년에 비오는 날이 100일이 넘어 세계적인 관광지로는 부적격이다. 발리나 하와이에 가 본 사람들은 내 얘기에 금방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관광국가로 먹고 살기에 우리의 문화유산은 너무 빈약하다.

벌이가 없으면 아무리 가계부를 잘 써도 소용이 없다.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원천은 과학기술 뿐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이 과학기술을 제대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 학생들이 과학기술을 제대로 배우고 있느냐는 우리나라가 5년 후, 10년 후 어디로 갈 것인지를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들은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있는가? 답은 너무나 절망적이다.

삼성전자가 핸드폰을 하나 만들 때 퀄컴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판매가의 15% 정도다. 반도체를 만들려면 설비와 부품을 일본에서 모두 수입해야 한다. 앞으로 남고 뒤로 믿지는 장사다. 그것도 삼성전자의 얘기다.

정부는 '2만 달러 국민소득 달성을 위해 5대 성장전략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독자적인 기술 없이 어떻게 5대 성장 전략 사업을 키우겠다는 말인가?

미련한 최후의 변절자들

지난해 서울공대생 23명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적어도 100명에서 150명의 공대생이 머리를 싸매고 골방에서 법전을 외워대고 있다는 증거다. 아마 그것보다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이 '나도 늦기 전에 고시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하며 마음의 갈피를 못 잡은 채 고시공부의 언저리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서울공대 학부생 5500명 가운데 10% 이상이 고시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대 물리학과에 다니던 한 학생이 다시 대입 시험을 봐서 서울의대에 입학했다. 면접장에서 제자를 만난 물리학과의 한 교수는 기가 막혀서 '물리 과목은 다 맞았겠지'라고 했다고 한다.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서울대 자연대와 공대의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돈 잘 버는 의사·한의사·변호사가 되겠다고 작심한 아이들에 비교하면 미련한 '최후의 변절자'에 불과하다.

나는 이 제자들이 딱하기만 하다. 눈치 빠르게 일찌감치 돈 버는 쪽으로 갈 것이지 서울공대에는 왜 들어왔다는 말인가.

서울공대나 자연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모두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특출나게 잘 했고, 과학기술을 연구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졌던 친구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유가 뭘까? 우리 사회가 '이공계 공부해야 이렇게 비전이 없는데 그래도 고집을 부리면서 이공계 공부를 계속 할 거냐'면서 이 아이들을 끊임없이 고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 대덕의 연구원들은 밤 12시까지 연구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 최고의 연구자 학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20대, 30대에 습득한 기술과 이론들은 순식간에 과거의 것이 되고 만다. 이공계 연구인력의 정년은 대부분 40대다.

이공계 인력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뒤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을 기다리는 건 '사오정'이라는 운명이다. 과학기술 인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눈길에는 존경과 냉소가 뒤섞여 있다.

이들이 한국을 이끌어 가는 견인차라는 걸 어렴풋이 인식한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활동을 지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싫다. 국민의 이해 부족과 낮은 지위와 보수 때문에 이공계 출신들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이런데도 당신들은 자식들을 이공계에 보낼 것인가? 의대와 한의대에, 법과대학과 상과대학에 자녀들을 보내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개인차원의 합리적인 선택이 모여 사회차원의 비합리적 선택이 되는 현상을 미리 알고, 차단하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몫이다.

재벌 총수들 '공장이 없으면 파이낸싱이 안 되잖아'

두 재벌기업 총수에게 "왜 기술력도 확보되지 않은 공장들을 자꾸 늘려가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의 대답이 똑같았다. "이교수, 그러니까 이공계 출신들이 눈치 없다는 얘기를 듣는 거요. 공장이 없으면 파이낸싱이 안 되잖아." 두 총수가 이끌던 거대 재벌기업 두 개는 IMF 전후에 무너졌다. 그때 한 재벌 총수는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생산성 향상, 그거 별 의미가 없어요. 5~6% 이윤이 남는데 30% 생산성 향상시켜 봐야 기껏 2% 포인트 이윤을 더 남기는 겁니다. 공무원들하고 골프 치고, 술 먹고 해서 큰 프로젝트 하나 따오면 20%, 30% 이윤이 남아요. 로비 잘하는 게 생산성 향상시키는 것보다 열 배는 쉽게 돈 버는 일입니다."

공장을 세워서 은행 돈을 빌리고, 그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덩치를 키워 정부의 특혜를 받고…. 그런 식으로 기업들은 살아왔다. 그 체질이 지금도 과히 많이 바뀌지 않았다. 서울대 법대와 상대를 나온 사람들은 재벌기업의 비서실, 기획실, 마케팅실에 근무하면서 정·관계에 포진한 동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지금도 이공계 졸업생들은 '당신들이 중요하다'는 말만 듣지 계속 벽지 공장을 돌게 된다. 이공대 졸업생들의 좌절은 여기서 시작한다. 엔지니어들이 말도 못 하고 속을 끓이는 사이에 몇 년 후배인 법대·상대 출신들은 쭉쭉 승진을 한다.

이공계 졸업생은 승진에 한계가 있다. 경영진에 많이 기용되지를 못한다. 벽지의 공장에 처박혀 있으니까 '촌닭 같아서'임원으로는 못 쓰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엔지니어들에게 프라이드가 있었다. 공장에서 생산성을 향상시켰다고, 품질개선을 했다고 총수와 간혹 악수할 기회도 있었다. 1960년대, 1970년대에 기업들이 외국 기술과 기계를 도입하면, 영문 매뉴얼을 보고 가동시키는 일을 서울공대 출신들이 했다. 복잡한 영어 매뉴얼을 보고 다들 기겁을 하는데 그나마 서울공대생들이 그걸 해낼 수 있었다.

요즈음은 그 일을 외국에서 공부한 교포 출신들이 대체한다. 영어 실력이 서울공대생들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기업 내부에서 '서울공대 나온 친구들이 기술을 알면 얼마나 더 아나, 교포 2세가 낫다. 미국에서 대학교 2학년 다니다가 왔다는데도 또랑또랑하고 매너 좋고, 아무나 만나도 섭섭하게 안 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공계가 아니라 이이계

왜 대학들은 이렇게 기술 경쟁력이 없는 공대생들을 양산하고 있을까?서울공대는 물론이고 대다수 공과대학이 이론 교육에 치중한다.

강의 시간에 외국 이야기만 들으니 학생들은 감흥이 일지 않는다. 학생들이 '우리가 직접 실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으면 교수들은 '여기서는 못해'하고 의욕을 꺾어 버린다. 학생들은 교수들로부터 '너희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받는다.

서울공대 교수의 학위논문 80% 가까이가 이론이다. 이공계가 아니라 이이계인 셈이다. 우리 공대생들은 실험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유학 가면 다 촌닭이 된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교수들은 '실험실습비도 없고, 실험장비도 없다, 어차피 나만의 책임은 아니지 않느냐'며 항변한다.

그러니 이공계 출신들은 유학 가서도 다 이론 쪽으로 간다.

기업은 해외협동이 있을 수 없다. 수요도 없고 공급도 없다. 기업과 대학 사이에 오가는 연구비는 기업들이 이공계 학생들을 조달하려는 차원에서 에이전시한테 주는 커미션일 뿐이다.

최근 들어 서울공대의 커트라인이 웬만한 지방의 의과대학보다 떨어진다. '공대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한다는 사실이 신문에 자꾸 보도되니까 공대가 더 죽는다'며 정원 미달 사실을 숨기는 것을 대책으로 들고 나오는 교수도 있다.

입학생들의 실력이 떨어져 수학·과학 '보충반'을 편성해야 할 지경이다. '이런 수준의 학생들을 데리고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하라는 말이냐'고 한탄하는 동료 교수들에게 나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들어왔을 때 과연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학교육을 했느냐'고 묻는다.

최근 정부에서 '이공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겠다', '병역 혜택을 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이런 대중적 구호를 보면 옛날 전봇대에 붙어있던 술집 여종업원 호객 구호가 생각난다. '침식 제공, 선불 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구호를 보면 "아, 저곳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판단을 내릴 것이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건 산업기술이고, 그것을 이끌어 가는 것이 이공계 교육'이라는 사실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의 전환이 없이 몇 개의 사탕을 나눠 주는 것으로 이공계 교육을 살려낼 방도는 없다.

내 실험실의 졸업생들 중 11명이 국제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졸업생들은 물론 교수인 나 역시 자부심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국가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먼저 드는 것, 이것이 우리 이공계의 현주소다.

이공계 기피의 역사적 뿌리

우리 사회는 기술을 천시하던 조선조의 문화로 회귀하고 있다. 기술을 중시하고 이공계가 우대를 받았던 1960년대 이후의 시기는 기술을 냉대한 긴 역사에서 잠시 반짝한 예외적인 시기였다. 역사 속에서 내 선배 과학자 기술자들은 모두 처절한 최후를 맞았다.

신라 무영탑의 전설은 아주 로맨틱하다. 탑 만들기에 동원된 석공은 오랫동안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아내는 남편이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스스로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탑 만드는 데 동원되면 죽도록 고생만 하고, 가정이 파탄난다' 불사에 동원된 석공들에게 오두막 하나씩 지어 주고 거기서 아내가 밥을 지어 주게 했을 법한데도 위정자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영탑의 전설이 주는 교훈은 '석공에게 시집가면 죽는다'였을지 모른다.

에밀레종 설화도 마찬가지다. 공명 설계는 컴퓨터 기술로도 파악하기가 어렵다. 신라 시대에 종을 만들려면 보통 고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독촉과 질책을 받았으면 끓는 쇳물에 제 아이를 넣어 볼 생각을 했을까?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흉내만 냈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대대손손 축복을 내리겠다'는 약속을 얻었다. 아들을 제물로 바쳐 맑고 그윽한 소리를 만들어낸 신라의 종 만드는 기술자가 그 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 설화 역시 '주조 기술자가 되려면 자식을 제물로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새벽 안개처럼 은은하게 사방에 퍼지게 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기술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천민 계층이었다. 장영실을 보자. 관노 출신 천민인 장영실은 당시 지극히 예외적으로 종 6품까지 벼슬이 올랐다. 세종이 신임을 하니 문반들의 시기 질투가 대단했다. 문반들은 '천민이 종 6품까지 올라가는 것을 좌시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 아래 세종에게 온갖 간언을 했으나 세종이 듣지 않았다.

그러다 장영실이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공주의 가마 손잡이가 부러져 공주의 가마가 구르고 말았다. 왕족의 신체에 상처를 입히면 모반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세종도 감싸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가마 손잡이에 미리 톱질을 해 놓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당시 돌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후 아무도 장영실이 어떻게 됐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과학 기술자로 출세하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관존민비

국내의 몇 개 안 되는 과학관에 가서 보면 서양 과학자들은 출생연도와 사망연도가 전부 기록돼 있는데 우리나라 과학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출생연도만 밝혀져 있을 뿐 사망연도는 물음표로 처리돼 있다. 과학 기술자들의 말로가 안 좋았다는 증거다.

나는 1990년대에 '손빨래 세탁기', '골고루 전자레인지', '따로따로 냉장고' 등을 개발해서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제품 6개를 만들었다. 이 덕에 1996년에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세종문화상을 받았다.

시상식 전날 예행연습이 있다고 해서 불려갔다. 단상에 올라가는 걸음걸이가 씩씩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몇 번을 단상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연습하러 나온 여고 합창대원들 앞에서 서울공대 교수의 자존심은 말이 아니었다.

이튿날 시상식장에서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시상을 맡은 이수성 국무총리는 나와 함께 서울대학 교수로 일했던 분이다. 그의 연설이 이어지는 10여 분 내내 나는 객석을 등진 채 그를 바라보고 서 있어야 했다. 시상식의 주인은 상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맨 앞에 앉아 사진기를 들고 있던 아내는 나의 뒤통수만 실컷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상품 개발로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는 나는 수상 소감 한 마디 못해 보고 단상을 내려와야 했다.

조선 시대 장영실의 얘기가 아니라, 1996년 서울공대 교수가 겪은 일이다. '이러니 다들 관료가 되려고 하지 누가 과학기술자가 되려고 하겠나' 하며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십면초가

나는 1986년부터 우리의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1992년 'W 이론을 만들자'에서 우리 경제가 십면초가에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우리의 산업구조는 선진국에서 도입한 낙후기술과 설비에 저임금을 결합한 허약 체질이었다.

주문자 상표를 부착한 얼굴 없는 수출로 우리 상품은 저급품으로 분류돼서 외국의 저소득층에 팔려 나갔다. 유통망과 애프터 서비스 시스템이 없어 단골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악순환이 이어져 실속 없는 산업팽창이 이뤄졌다.

1975년을 기점으로 우리 산업의 틀을 바꿔야 했다. 1975년까지만 해도 '저임금 양산조립'은 한국에게 보장된 독무대였다. 그렇지만 기술도입과 단순 모방만으로는 한계에 직면했고, 값싼 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이라는 넘을 수 없는 산이 눈앞에 있었다.

1975년의 기술도입료가 전년도에 비해 갑자기 4배나 늘어났다. 이때부터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었어야 했는데 우린 그걸 하지 못했다. 기술 도입료와 로열티가 계속 올라가자 기업들은 현장 작업자들만 다그쳤다.

지금도 관료와 기업인들은 '고임금 저효율이 해소되어야 경제위기가 해소된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 허리띠만 졸라매면 위기가 해소된다는 말인가? 이웃집에서 카시미론 솜 이불을 팔아대는데 낡은 솜틀 기계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이것은 1975년식 사고방식이다. 제조업은 기술정보, 상품기획, 연구개발, 설계, 설비계획, 부품조달, 생산, 판매기획, 판매, 사후관리 등 대략 10단계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우리의 제조업은 상품기획과 연구개발 설계는 해외기술의 도입으로 대체했고, 판매 및 사후관리 단계는 외국 바이어들에게 기대 왔다. 우리 손으로 직접 담당하였던 것은 생산부분 뿐이다.

우리 제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응급 처방은 무엇일까. 우선 선진 제품의 모방에 심취했던 역개발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창의적인 연구개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목숨을 걸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상품 기획을 해 본적이 없다.

선진기업에서 만든 제품을 도입하고 모방설계를 했으며, 세계시장에서 소비자 구매욕이 입증된 상품만 골라 뒤늦게 기획에 착수하였다.

나는 1989년 산학협동을 통해 '하이 터치'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상품을 개발하자는 게 목표였다.

1989년에 만든 입체형 컴퓨터 키보드는 손목의 피로를 덜어 주는 제품이었다. 1993년에 출시되어 1조원 이상 팔린 맥킨토시 키보드보다 4년 앞선 기획 상품이었다. 한국의 대기업은 '이제까지 이런 제품을 본 기억이 없다'는 이유로 대량생산을 망설였다.

'그렇게 좋은 키보드라면 왜 IBM에서 아직까지 개발을 하지 않았겠는가'가 업체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우리 기업은 남의 것을 모방만 해왔기 때문에 남이 안 하는 것을 만들면 큰일이 나는 줄 안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리모콘으로 조정하는 자동 진공청소기를 개발했다. 최근 필립스가 제작해 국내에서 한 대에 200만원 이상으로 팔리는 자동 진공청소기와 똑같은 모양과 기능의 제품이다. 차이가 있다면 필립스는 진공청소기에 자동 감지장치를 장착했다는 것뿐이다.

자동 진공청소기의 기획 아이디어를 냈지만, 어느 전자제품 업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산학협동을 추진하면서 한국 기업인들 머리 속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삼부가 이론'을 발견했다.

경영혁신은 죽지 않으려고 하는 일

신제품 개발을 위한 상품기획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기업의 관리자들이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개발을 기피한다.

첫째,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한다는 이유다. 새로운 기능을 첨가하면 제품 원가가 올라가고 판매가도 높아지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량산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가 나온다. 나는 직육면체로 만든 제품의 모서리를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곡선으로 처리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기업 쪽에서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곡면으로 바꾸면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신뢰성을 보장할 수가 없다는 논리다. 새로운 기능이 첨가되면 부품이 늘어나고 고장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기업 측에서는 '삼부가 이론'으로 신제품 개발에 반대했다.

어떤 기업이 일류기업인가? 일류기업은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산업분야를 개척하고 최고 혹은 최초의 기술과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둘째, 이 기업을 모방한 다른 기업들이 덩달아 돈을 벌어야 한다. 즉 보고 따라 하는 이류기업들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초일류기업이란 무엇인가? 국적과 사업 분야를 막론하고 전세계의 일류기업들이 초일류 기업의 기술과 상품 경영철학을 본받아서 큰 이익을 내야 한다. 초일류로 분류될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에 몇 개 밖에 없다. 이런 기준대로라면 한국에는 불행하게도 초일류 기업이 없다.

삼성은 일류기업이지 초일류기업이 아니다. 삼성이 '신경영'을 추진할 때 삼성 임원들의 방마다 '잭 웰치'의 책이 꽂혀 있었다. 나는 삼성 임원들에게 '삼성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잭 웰치를 쫓아갈 수 없다'고 얘기했다.
삼성 사람들이 '왜 안 되냐'고 묻기에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잭 웰치는 현재 1등이거나 가까운 장래에 1등이 될 수 있는 2등을 빼놓고는 다 잘라냈다. 삼성이 그렇게 할 수 있나? 삼성그룹이 공중 분해되어도 좋은가? 잭 웰치가 한 번에 10만 명을 감원했다. 한국적 정서를 이겨내고 수만 명을 감원시킬 자신이 있나? 잭 웰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와서 직접 서류 나르고 재떨이 던지며 경영혁신에 달라붙었다. 당신 회사의 회장이 그렇게 할 수 있나'

삼성 관계자들은 '신경영을 하려는 총수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고 항변했다. 나는 '경영 혁신은 총수의 의지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안 하면 죽기 때문에 하는 것이 경영혁신'이라고 했다.

그러면 삼성 관계자들은 대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죽기 살기로 경영혁신을 안 하는데 왜 삼성은 안 죽습니까?'

내 대답은 이렇다. '지금 사방에 암 걸려서 링거 꼽고 누워있는 환자들이 수두룩한데 폐병 걸린 환자를 죽일 수는 없지 않나?' 한국에서 경영혁신을 하겠다는 기업들은 대개 '전담추진반'을 둔다. 전담추진반은 보통 상무급이 팀장이 된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상급자인 사장들의 목을 자르겠는가?

IMF 경영혁신의 최대 피해자는 연구인력

IMF 이후 제일 먼저 잘려나간 것이 '전담추진반'에 연줄을 확보하지 못한 연구소의 연구인력들이었다.

총수가 직접 나서서 '우리 기업이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밤새워 고심했다면 연구인력은 제일 마지막 감원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했다.

이게 대한민국 기업의 비극이고, 나라의 비극이다. 한국은 기업의 회장이 구설수를 외면하기 때문에 직접 나서서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잭 웰치는 '전담추진반'을 두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감원대상을 고르고, 자르고, 불필요한 부서와 인력을 잘라 냈다.

1997년 초 한 경영자 모임에서 내게 강연을 요청했다. 당시 '가격 경쟁력만이 살길이다'는 구호가 위력을 떨치던 시절이었다. 나는 강연을 하면서 '아직도 가격 경쟁력을 강조하는 정부 관료와 기업 경영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기업활동에서 가능한 한 끝까지 피해야 할 것이 바로 경쟁사와 가격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가격경쟁이란 최후의 승자 하나만이 남을 때까지 출혈을 하면서 계속해야 하는 죽음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나서서 '죽음의 경기만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아직도 외치고 있다.

우리의 제품들은 제조원가가 높은 반면에 판매가가 낮아서 가격 경쟁력을 따질 시기를 지난 지 오래다. 우리 제조업은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에 비해 높은 금융 비용과 부동산 가격, 물류 비용, 로열티, 실질 임금 등이 높아 '5고'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울타리를 친 내수시장에서 국내 가격을 높게 받아 연명해 왔다. 마치 친척들에게는 비싼 값을 받고 일반인에게는 싼 값에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긴 것과 같다.

운동경기에서 우리 팀이 계속 실점을 하면 관중들은 '작전을 바꾸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의 과거 작전은 가격 경쟁력이었으나, 가격 경쟁력 작전으로 가서는 중국은 물론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상대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살길은 가격을 높여서 받을 수 있는 '가격 결정권'을 확보하는 길뿐이다. 제품가격을 높이고도 물건을 파는 방법은 독특한 제품, 경쟁상대가 없는 고부가 제품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겠다고 몸부림을 쳐야 한다. 중국에는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은 물론 화상 네트워킹과 마케팅 능력이 있고, 일본에는 기술력이 있는데 우리가 무슨 근거로 가격 결정권을 가질 수 있을까? 해답은 창의력에 있다.

우리에게 창의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모든 걸 해 봤는데 아직까지 안 해 본 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혹시 창의력이 있을지 모른다.

두 번째는 나 스스로 경험을 통해 우리가 창의력이 많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창의력을 가지고 소규모 실험을 해서 세계시장에 성공여부를 타진한 다음 군단 병력에게 파는 식으로 가야 한다. 우리의 3대 효자 상품인 휴대폰, LCD, 자동차 산업은 5년 안에 중국의 추격을 받아 자멸할 운명이다.

'가격 결정권'만이 살길이다

글로벌 마켓에 진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마켓을 독점 내지 선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가격 결정권만 가지면 우리는 동양의 맹주가 될 수 있다.

우리 기업이 가격결정권을 가지려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내가 내놓은 아래의 물음들에 독자들이 응답을 해주었으면 한다.

'정부가 5년 이내에 이공계 기피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대책을 내놓을 확률이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는가?''기업이 5년 이내에 정부지원 없이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추진할 확률은 몇 퍼센트라고 보는가?' '대학이 5년 이내에 스스로 교육개혁을 추진할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학부모들이 내 자식만은 편안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고, 자녀에게 이공계 대학 진학을 권유할 확률은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항목이든 "10% 이상"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응급실로 가야 한다. 온전한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 산업은 도시가스에 밀려 설 자리를 뺏긴 구공탄 공장에 비유될 수 있다. 생산성을 향상해 하루에 구공탄을 10%씩 더 찍으면 구공탄 공장은 살아날 수 있을까? 구공탄 공장의 '고임금·저효율'이 해소되면 구공탄 공장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답은 둘 다 '아니오'이다.

도시가스가 도입되는 초기에 '도시가스로 업종을 전환하라'고 했다면 연탄공장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 웃기지 마라. 온돌방이 존재하는 한, 겨울철이 존재하는 한 구공탄은 영원하다.' 연탄공장은 그렇게 전의를 불 태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음가게와 냉장고, 우마차와 용달차, LP와 CD 모두 똑같은 원리다. LP 5000장을 모은 음악 애호가에게 CD로 바꾸라고 한다면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오스트리아에 여행 갔을 때 밥 굶으면서 산 오페라 판, 유학할 때 아내에게 잔소리 들어가며 산 클래식 전집,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그래서 음악 애호가도 이렇게 외친다. "클래식이 존재하는 한, 아니 오페라가 존재하는 한 LP는 영원하다." 그러나 지금은 축음기 생산이 중단되어 더 이상 LP를 들을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과거의 산업구조가 일직선인 주로를 눈감고 뛰기만 하면 되는 마차 경주였다면, 지금의 산업구조는 폴로 게임이다. 말의 눈을 절대 가리면 안 되고 주로도 일직선이 아니고 그라운드다. 어디로 갈지 모르며 빨리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빨리 설 줄 알아야 하고 세 박자 쉬었다가 달릴 수도 있고, 세 걸음 뛰다가 정지도 해야 하는 복잡한 게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마차 경주 챔피언들이 폴로 복장을 하고 나와서 설치고 있는 형국이다.

요즈음 우리의 국가 목표는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이다. GNP로 국가의 비전을 내세우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의식은 거의 필리핀 수준이다. 우리에게는 '이웃을 돕겠다', '인류에 혹은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정신이 희박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기 조차 힘들다. 원래 패러다임의 전환은 극히 일부가 시도하는 것이고 시도한 사람 중에 극히 일부가 성공한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

이공계 기피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

조선조의 한 왕이 정승들에게 "광풍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초가삼간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영의정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광풍이 쇠잔해지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이 얘기는 우리나라 지도계층의 철학을 잘 보여 준다. 사방의 문을 열어 놓으면 초가집은 무너지지 않겠지만, 방 안에 있던 민초들은 다 어떻게 될 것인가? 모두 바람에 날려가서 죽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끈질기게 버텨왔다. 7년 전쟁에서 절반에 가까운 민초들이 사라진 임진왜란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이공계의 위기는 역사적 뿌리가 깊다.

이공계의 위기에는 기업과 대학, 사회 전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잭 웰치의 얘기에서 거론했듯이, 이공계의 위기는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각오로 달라붙어야 할 문제다. 정책 구호나 유인책 몇 가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대학이나 이공계 대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기업, 우리 사회 전체가 이공계 기피현상의 최종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살고 싶으면 해결해야 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놔두면 된다.

< 서울대 이면우 교수의 월간조선 기고 글 >




출처가 웃긴대학입니다

정말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글을 읽었지요..
* Master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1-31 12:36)
===========================================================

[펌]어느 물리학자가 보는 이공계 위기의 본질 /가이우스

“이공계 위기”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제언

먼저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저는 1971년 생으로, 1990년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에 입학했습니다. 동 대학원에 진학하여 지난 2001년 박사 학위를 받고 2001년 3월부터 현재까지 연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BK21 사업단의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물리학자입니다. 아직은내세울만한 업적도 없고 박봉(연봉 1400)에 시달리지만 나름대로 제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인구에 회자되는 이른바 “이공계의 위기”에 저 역시 큰 관심과 우려를 가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나 각종 언론에서 제기하는 위기의 진단과 해결책
이 뭔가 본질을 비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자연과학대학, 그리고 물리학과, 그것도 입자물리 이론이라고 하는 매우 좁
은 분야에서 연구하는 사람이라, 다른 분야에 대해 제 분야만큼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특히, 공과대학의 세세한 형편이나 분위기는 전혀 모른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그리 영민치 못한 관계로 제 생각이 제 주변의 매우
협소한 고민거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걱정도 사실 저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정부에서 “이공계”
종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것도 좋으리라는 판단에 제 짧은 생각을 글로
옮깁니다.

저는 많은 중요한 통계적 수치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제가 본문에 간혹 인용하
는 숫자들도 혹 잘못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이 점 미리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
다. 편의상 경어가 아닌 평어로 쓰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이공계의 위기인가, 공대의 위기인가?

최근의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이공계의 위기의 “증상”은 대체로 다음과 같
다.

- 고등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한다.
- 이공계 대학생들은 대학에서 딴짓---사시나 행시, 아니면 수능 다시 봐서 의·
치·한(의대·치의대·한의대) 등---을 많이 한다.
- 대학생들이 졸업해도 취직이 잘 안된다.
- 어렵게 취직을 해도 돈을 많이 못 번다.
- 저임금에 만족하고 살려고 해도 사회적 박대와 국가적 냉대가 심하다.
- 그나마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도 점점 빨라진다 (원래 빨랐다).
- 이 모든 현상을 듣고 보고 자란 고등학생들이 더더욱 이공계를 기피한다.
- 이로써 이공계 위기(혹은 기피)의 악순환이 완성된다.

각종 매체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떠도는 이공계 위기와 관련된 내용은 위 싸이클
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공계 당사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들도 위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좀 더 축약해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국가 경제 발전
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했는데 왜 대우가 이 모양이냐”로 요약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왜 내가 고민하는 것은 저기 없을까,
왜 다른 업계 종사자들 얘기처럼 들릴까, 난 이공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많
이 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이공계생들이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거나 창업하
는 반면 나는 계속 학교에 남아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내 고민이 깊어질수록 나는 위의 “악순환 공식”이 그저 사태의 겉모습,
극히 일부 드러난 부분만을 표현할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이건 제대로 된 진단
이 아닐 뿐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을 내어 올 수 없
다.

대부분의 이공계생은 공대생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공계생은 회사에 취직한
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대생과 그 중의 다수인 기업체 엔지니어의 “처우개선”
이 “이공계 위기”의 처음과 끝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기껏해야 “공대생의 위기
”에 불과하다. 물리학자로서의 나의 고민, 나의 위기, 나와 내 동료들의 암담함
은 그 뻔한 레퍼토리 --- 열악한 환경, 냉대와 무시 등 --- 로 담아 내기엔 뭔
가 부족하다.

이공계의 위기는 결코 공대의 위기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공대의 위기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공계의 위기는 또한 이
공계“만”의 위기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2. 패러다임의 변화, 이공계의 위기의 본질은 학문의 위기이다.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내 주장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공
계 위기의 본질은 학문의 위기의 전면화이다.”

나는 이 글에서 내 주장을 논증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이공계 위
기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 보
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학문의 위기를 들고 나온 중요한 계기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이
공계 위기의 현실이나 해결책들이 지극히 “경제논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
다. 이공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학문과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

이 말이, 학문과 경제가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각자 따로따로 놀아야 한다는 뜻
이 아니라는 건 아마 다들 잘 이해하리라고 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학문
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문 그 자체 내의 내적 논리, 다른 그 어떤 분야의 논리
가 아닌 학문 그 자체의 발전 매커니즘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우리나라 '이공계'가 혁혁한 공을 세운 건 사실이고 또한 내
세우고 싶은 치적이 많긴 하겠지만, 오히려 이런 주장들이 나중에 우리의 발목
을 잡을 수가 있다. 왜 학문의 존재 이유를 국가의 경제발전에서만 찾아야 하는
건가?

한 나라의 학문의 발전과 융성은 다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다른 그 무엇과
도 비교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
아왔던 지적 발전의 맥을 도도히 이어가는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전 인류의 보편
적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되는 숭고한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들
이 한낱 돈 몇 푼의 논리에 빗대어 얘기되어서야 학문이 경제의 노예밖에 더 되
겠나.

이공계인들의 푸념을 단순화하면, 우리가 국가 경제 발전에 크나큰 도움을 줬는
데 왜 지금 우리가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또 한편으로 보자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이 결국 돈을
얼마나 벌어 들이느냐로 가치매김해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리학자인 나
로서도 이와 관련해 할 말은 많다. 대한민국 대표 상품인 반도체 개발에 고체 물
리학이 기여한 바는 가히 절대적이다. 인터넷을 처음 개발한 곳이 유럽 공동 입
자 가속기 그룹 (CERN)이고, 전기를 발견하여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사용료”를
내게 한 장본인도 영국의 물리학자 패러데이였다. 그러나, 예컨대 전자기 유도
의 발견의 가치가, 지금까지 인류가 전기 사용료로 지불해 온 액수로만 매겨질
수 있을까.

돈벌이가 지상명령인 기업체에서는 이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체를 벗어
난 다른 곳 (특히 대학) 에서까지 이런 경제논리가 팽배해지는 것은 참으로 위험
하다. 당장 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공계인들은 나가 죽으란 말인가. 경제논
리는 몇몇 잘 나가는 공대 출신 엔지니어들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좀 더 많은
돈을 얻어내기 위한 논리일 뿐이다. 전체 이공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을 내세워 사회적 가치판단을 내리게 하여 결국 자기가 속한 그룹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것은 집단 이기주의다.

경제논리는 당연하게도 기업에서 대환영이다. 그들은 고급 인력과 고급 기술과
고급 지식을 아주 값싸게 얻을 수 있다. 돈 안 되는 이공계 분야를 마치 손 안
대고 코 풀 듯 이공계 자체의 몸값 높이기 경쟁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 정책
에 의해, 그리고 전 사회적인 돈벌이 지상주의에 의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재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논리에 매몰되면 결국 이공계 위기의 문제는 밥그릇 싸움이나 집단 이기주
의가 될 수밖에 없다. '이공계'라는 말로 뭉뚱그려지면서, '과학기술자'들은 대
부분 기업이나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혹은 경제발전의 원천기술을
만들어내고 그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 쯤으로 인식되는 것 또한 경제
논리가 빚어낸 비극이다. 그런 '이공계' '과학기술자' 속에서 나 같은 입자물리
학자가, 남극 세종기지의 대원들이 설 자리는 없다.

이공계의 위기가 이렇게 전면화되기 몇 년 전인 1995년 경 주요 대학에서 학부제
가 실시되며 많은 대학 교수들은 우리 나라 기초 학문의 위기를 경고했었다. 그
리고, 그로부터 약 5년쯤 전에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돌았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지금 이공계의 위기는 1990년대에 줄기차게 경고되었던 이른바 “학문
의 위기”의 완결판인 셈이다.

이공계 문제를 경제논리가 아닌 학문의 논리로 바라봐야만 이공계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지식이 온전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 학문적 성과는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부나 언론 뿐만 아니라 이공계인들조차 자신의 존재 근거를 “경제
발전”에서 찾았었다. 이런 관점은 근본적으로 기업 중심적이기 때문에 이공계 자
체의 발전 논리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공계가 정말 사회에서 대접받으려면
지금처럼 이공계가 경제논리 앞에서 경쟁해서는 안 된다. 그 반대로, 사회와 기
업에서 “모셔 가도록” 하려면 이공계 스스로의 존재 근거와 자신만의 가치를 살
려야 한다. 즉, 기업체들이 경쟁하도록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에서부터 이공계를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 있는 학문으로 바라봐야
한다.

정부의 시선이 기업에만 집중되어 있는 이상 이공계 위기에 대한 의미 있는 대책
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기껏해야 이공계생 장학금 지급이나 고위 공직자 쿼터제
등의 땜빵책 뿐이다.


3. 학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볼 때, 학문이 융성하지 않고서 한 나라나 세력이 융성
했던 적이 있었던가 자문해 보면 그 대답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학문이 살아나
야, 학자들이 대접받아야 나라에 미래가 있다는 그 진부한 말을 나는 이공계 위
기에 대한 근본대책, 가장 확실하면서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우리 나라의 물리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나라의
인문학이 융성해야 된다고 확신한다. 왜 그런가? 인문학이야말로 모든 학문의 근
본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발전하고 융성하여 학자들이 넘쳐나고 대중화되어 있
다면 그 사회는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일 것이다. 목소리의 크기보다는 이
성과 토론이 지배하고 다양한 가치들이 그 존재의의를 서로 인정받으면서 상호침
투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그런 사회 말이다. 이
런 사회풍토 속에서라야만 그 어떤 다른 학문도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다. 물리
학이나 여타의 공학도 이런 비탕 위에서 제자리를 찾아 발전할 수 있다. 흔히 말
하기를, 우리 나라 학생들이 공부는 잘하는데 창의적인 연구는 약하다고들 한
다. 그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인문학적 풍토의 척박함이다.

이렇게 인문학과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학자들이 대접받는 사회가 된다. 아니, 정
부가 나서서 기초학문 하는 학자들을 중심에 놓고 국가 정책을 펴야 학문이 발전
한다. 그래야, 기업체에서 공학자, 물리학자를 “우습게” 혹은 “싸게” 보지 못한
다. 지금 우리 나라의 전반적인 국가 정책은 정반대이다. 국가와 정부 관료들이
먼저 나서서 학자들을 “우습게”, 그리고 “싸구려” 취급한다. 어떻게 하면 대기업
들에게 고급 인력을 값싸게 공급할 것인가만 생각한다. 이래서는 학문이 죽는
다. 아니,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이공계의 위기도 문제이지만 우리 나라 인문학의 위기, 혹은 사망선
고가 훨씬 더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즘 누가 인문대 대학원 진
학해서 공부하려고 하겠나. 교수도 태부족이고 병역 특혜도 없다.

서울대에 가면 규장각이라고 있다. 주로 고문서들 보관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
속에 어떤 문서들이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들었
다. 박사급 인력을 몇 명만 투입하면 값진 논문들 쏟아질 판이라는데, 이걸 못
할 정도로 고급 인력이 부족하다. 게다가, 1년에 몇 억이면 아주 훌륭하게 자료
들을 보관할 수 있는데도 그 몇 푼 안 되는 설비비가 없어서 자료들이 먼지 뒤집
어 쓰고 썩어 간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의 인
문학 수준이 이 모양이니 프랑스에서 이걸 트집 잡아 외규장각 도서 못 돌려준다
고 하지 않았던가.

도대체가, 퇴계와 율곡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연구소가 일본에 몇 배나 더 많은
현실에서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얘기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중
국은 이른바 동북공정을 10년도 넘게 준비해 왔는데,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
니까 고구려를 공부하니 어쩌니 난리 법석이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 땅
의 인문학이 얼마나 피폐해 있는지 일일이 경우를 다 세기도 힘들다.

오랜 군사 독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편법과 술수, 반칙, 적당주의, 지역주의,
권악징선 등등이었다. 이런 폐습들이 이제는 우리 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로 발목을 잡고 있다. 원칙을 세우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귀찮거나 번거롭다거나 바보같은 짓이 아니라 우리 사회
를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 “기
본”에 대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 선진국 진입이나 소득 2만불 시대를 말할 수
는 없다. 지난 국민의 정부가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것도 아마
이런 맥락이었으리라.

기본이 바로 서고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로 해야 할 일들
이 많겠지만, 그 사회의 기초학문, 특히 인문학을 제대로 세워 내는 것도 빼놓
을 수 없다. 흔히 얘기하는 “국민들 의식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한 사회
의 인문학의 성숙도와 결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여태껏 우리 나라 정부가 국가적인 사업으로 학문을 진흥
하려고 한 정책을 잘 알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의 기틀을 잡고 태평
성대를 이룬 시대에는 빠짐없이 학문장려책이 중요 국책사업으로 들어가 있다.
이 땅에 공화국 정부가 들어선 지 무려 반 세기가 훨씬 지났건만 아직 제대로
된 국책 사업으로서의 학문진흥책이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군사 독재가 30년 이
상 지속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어쨌든···).

인문학이 무너진다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당시에 아무도 주
목하지 않았던 학자들의 경고가 이제는 전 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이공계 위기로
다가왔다. 한두 해 동안에 이공계 위기가 찾아온 게 아니라 우리 나라 전반적인
학문의 위기가 말기암 시기까지 왔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만큼 그 처방도
담대하고 근본적이어야 한다.


4. 문제는 돈이 아니라 MIND이다.

우리나라의 기초학문이 튼실하지 못한 이유를 흔히 여유롭지 못한 주머니 사정으
로 돌리곤 한다. 무한 경쟁의 시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술력에 집중적
으로 투자하여 일류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생존전략이라는 공식이 상
식이 된 지 오래다.

당장 몇년 안에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세계에서 도태되고 마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기초 학문에 “한가하게”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데, 정말 우리 나라에 돈이 없어서 이 땅의 기초 학문이 아사 직전인 것일
까.
나는 무엇보다 국가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관료들의 마인드를 문제 삼고 싶다.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나라는 세계 13대 경제 대국이다. 돈이 없다
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예컨대, 제일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쏟아 부은 공적자
금이 무려 30조가 넘는다. IMF 이후 금융권에 이런 식으로 들어간 돈이 내가 들
은 것만 200조 가까이 되고 그 중 60% 이상이 회수 불능이라고 한다.

경제 논리에서 따져 보자면 이렇게 공적 자금을 붇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논란
도 많을 것이다.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적어도 우리 나라 재경부 관료들은 자기
들 생각에 은행 하나가 쓰러지면 국가 경제가 결단날 것이라고 판단되는 그 즉
시 수십 조원을 동원한다. 그 돈의 원금조차 제대로 회수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
을 뻔히 알고도 그 많은 돈을 끌어 댄다. 그만큼 은행 하나의 흥망성쇠가 국가
존망과 직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대학이 망해가고 중고등학교 공교육이 무너
지고 있는데,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재경부가 언제 수십 아니 수 조 원이라도 긴
급 투입한 적이 있었나 라는 것이다. 학문이 망해 간다고 아우성친 것이 어제 오
늘 일도 아니건만 국가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에 큰 문제가 생겼는데도 그게 어
찌 부실은행 하나의 존망보다도 못할 수 있단 말인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
다.

결국, 우리나라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재경부 나으리들은 적어도 학문의 중요
성, 대학이 쓰러져 가고 있는 상황의 심각성, 그것이 국가의 존망에 곧바로 직결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전혀 체감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학문에 관한 마
인드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디 이 뿐이랴.

정부에서는 선뜻 큰 돈을 들여서, 아니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서 학자들과
연구소와 대학들을 위해 장기적인 정책을 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학문이 융성
해지려면 갖가지 제도와 시설과 사회 시스템이 잘 맞물려야 하기 때문에 이 또
한 사회의 중요한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인재 양성 인
프라가 거의 전무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내실 있게 구축될 전망이 전혀 보이
지 않는다. 다른 사회 간접자본의 경우와는 비교도 안된다.

단군 이래 최대 역사였던 인천국제공항을 볼까. 여기 들어간 돈이 약 5조원(?)이
다. 애초에 인천 앞바다에 바다를 메워 거대한 허브공항을 건설한다는 계획 자체
에 반대도 많았다. 건설하는 동안에는 내내 부실공사 시비와 경제성이 의심받았
다. 인천공항은 아직 적자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중요한 국책 사업이라며 그대
로 밀고 나갔다. 성공 가능성이 100%여서가 아니었다. 신공항의 존재가 향후 대
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SOC 중의 하나라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
다. 그래서, 반대와 걱정과 우려와 적자를 무릅쓰고 “강행”한 것이다. 왜 이런
과감한 결단을 학문 인프라 구축에는 하지 못하나.

또 어떤 사람들은 재원마련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 또한 뜻을 먼저 세우고 방
법을 찾으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조세와 국방은 국가 정책의 근본을 이룬다.
사회 일각에서는 부유세 신설도 제기하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관점에
서 본다면 부자들한테서 특별세 걷어 오로지 학문진흥에만 지원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법인세 1%를 주장한다. 연간 2천억원 정도 된다. 연간
2천억이면 내가 알기로 현재 진행 중인 BK사업보다 오히려 많을 것이다. 마인드
만 바꾸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국방비를 제대로만 써도 돈을 좀 남길 수 있다. 현재 군납비리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하다. 우리 나라 한 해 국방비는 대
략 17조 6천억 정도 된다. 그 중 60만 대군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데에 적어
도 60%가 쓰인다. 이런 곳에 들어가는 군납품은 그리 중요한 기밀이 될 것도 없
다. 이거 모두 인터넷 경매 붙이면 적어도 반값에 조달할 수 있다. 예전에 정부
모 부처에서 부처 조달품을 인터넷을 통해 경매로 조달한 결과 예전보다 70%의
비용을 절감한 예가 있다.

17조원의 60%면 10조가 넘는다. 그 중 절반을 아끼면 연간 무려 5조원이 남는
다. 병사들 먹이고 재우는 문제, 물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학자
들 먹이고 재우는 문제도 중요하다. 하루라도 병사를 먹이지 않으면 국가 존위
가 위태롭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학자들이 굶고 있어도 또한 국가
존망이 위태하다는 것은 아무도 느끼지 못한다. 역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MIND이다.

어디 돈 나올 구멍이 이것 뿐이겠는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은 헛말이 아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성공적으로 잘 했다. 차세대 생존전략 10대 과제 선정해
서 올해부터 당장 연간 3조원씩 들어간다. 잘하는 일이다. 이제는 학문진흥을 위
해서도 제발 장기적인 “국책사업”을 벌여야 한다 (BK21 사업은, 우선 예산 규모
면에서 “국가적 사업”에 끼지 못한다).

돈 없다고 하기 전에 우리 “마음”은 있기나 한지, 학문이 망해 가는 것이 은행
문 닫는 것만큼, 휴전선 장병들 굶기는 것만큼 절박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그
것부터 먼저 자문해 보라.


5.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제 좀 더 구체적인 위기 극복 방법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정부에서도 간혹 학
문을 진흥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은 잘 하는데 (특히 선
거철에), 진심인지 거짓인지 알 수는 없어도 그 다음에 나오는 대책들 보면 나
같은 과학자들 속을 시원하게 해 주지 못한다.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내놓는 대
책의 비전은 원론적인 얘기들 뿐이고 구체적인 정책은 급조된 땜빵들이 대부분이
다. 이공계 위기를 정말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싶다면, 다음 제안에 귀기울이기
바란다.

첫째, 경제논리를 버려라.
둘째, 고속철 하나 더 건설한다는 심정으로 “국책사업”을 벌일 각오를 해야 한
다.
셋째, 고급인력들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라.
넷째,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하라.

첫 번째와 두 번째 항목은 앞서 이미 장황하게 설명했었다. 특히 첫 번째 항목
과 관련해서 한 가지 부연하자면, 이제는 제발 학문에 “투자”한다는 표현 좀 자
제했으면 한다. 적어도 투자의 우리에게 사회화된 의미는, 이를테면 1000원 지
금 집어 넣으면 머지 않은 미래에 (보통 정부 관료들은 1년을 못 참는다) 1300원
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라고 할 수 있다. 학문에 '투자'하겠다고 생각하는
정책입안자들 머릿속에는 마치 증권시장 가서 주식 사는 것과 같은 생각이 맴돌
것이다. 정부 관리들이나 여타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학문의
발전은 요원하다.

이 분들에게는 학문이란 실패의 연속, 잘못된 모델링의 반복, 끝없는 시행착오,
의미 없어 보이는 단순 작업의 반복,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도전,
... 이라는 말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게다.

학문에 돈 쏟아붓는 것은 결코 이런 개념이 아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그냥 “
돈 버리는” 일이다. 우리 정부가, 대지진 참사로 고통받는 이란 정부에 구호물자
를 보내고 구호금을 1억 달러 쯤 보냈다고 하자. 이게 투자인가? 지금 형편 좀
좋을 때 못 살고 힘든 나라 도와 줘야 우리가 힘들 때 도움 받을 수 있다는 보장
형 보험이라도 되나?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런 구호금은 국제 사회 일원
으로서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가깝다. 장병들 밥 먹이고 옷 입히면서
우리는 “투자”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좋은 음식과 좋은 장비는 군대의 사기를
높일 것이고 결국 더 확실한 방어태세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
리 경제가 얼마 더 안정화될 것이기 때문에 얼마만큼 장병들 복지를 더 증진시
킬 수 있을지 경제학자들이 계산하지 않는다. 돈 놓고 돈 먹는 “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냥 비용이다. 한 국가가 국가로서의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
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출해야만 하는 그런 돈이다.

학자들에게 쓰는 돈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연구하는 입자 이론 물리학, 이거 아
무리 열심히 해 봐야 돈 못 벌어 준다. 나한테 1년에 1억원을 연구 지원비로 준
다고 해서, 내가 그 돈을 1년이나 2년 후에 1억2천만원 혹은 2억원으로 되돌려
줄 수 없다. 내 연구 성과가 산업적으로 이용되어 내후년에 큰 돈을 벌어다 줄
가능성? 물론 0이다. 그러니까, 제발 기초 학문 하는 사람들한테 돈 몇 푼 쥐어
주면서, “이 연구의 산업적 효용성” 이런 질문 하지 말기 바란다. 솔직히 말해
서 그런 거 없다. 혹여 몇 단계 거쳐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 내 연구 성과가 경제
발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말하자면
북경 나비의 날개짓이 뉴욕 앞바다에서 해일 일으키는 수준에 비견될만할 것이
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초학문 살리려면 학자들한테 돈을 펑펑 쏟아서 “버릴” 각오
를 해야 한다. 그 돈이 아깝다고 생각이 들면 우리 나라는 중진국에 머무르게 되
고 당연히 지불해야 되는 돈이라고 생각이 들면 그제서야 우리의 재경부 나으리
들과 비로소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며 선진국 진입과 소득 2만불 시대는 머지 않
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이나 재경부 관료들은 이런 데 쓰는 돈이 아깝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잘못된 선심공약으로 쓸데없는 “저속철” 만드느라 내
다버린 18조가 훨씬 아깝다.

실제로 돈을 쏟아 버릴 때에, 학자들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평가는 해야 할 것이
고 자금의 차등지원 또한 현실적인 문제일 것이다. 학계에서도 연구비를 사적으
로 빼돌린다든지 하는 일들이 전혀 없지 않을 테니까, 사실 학계 내부에서 개선
할 점도 분명히 많다.

이런 점들을 인정하면서 내가 정부나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제발 다른 논리나
메커니즘이 아닌 지극히 학문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보려고 노력해 달라는 것이
다. 요컨대, 학문에 “투자”하지 말고, 인류 공동의 지적 산물을 만들어 내는 일
에 경제대국에 걸맞는 “댓가”를 지불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돈을 어디다 어떻게 “버려야” 할까? 정부에서 이공계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고급 인력들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
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미 각 대학에서는 대학원 중심 대학을 기치로 내걸고 석
박사 인력들을 대량생산하고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이런 인력들을 제대로
흡수할 스펀지가 없다. 이는 정부의 시선이 기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
갈 데 없는 석박사 인력은 그 자체가 “값싼 고급 노동력”일 수밖에 없다. 정부
나 대학이 이들의 향후 진로에 대해서는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고 무작정 대학
원 정원만 늘리고 BK사업으로 대학원생들 월급 대 주는 것은 종국적으로 기업들
만 살찌우게 되어 있다. 이공계가 사회적으로 홀대받을 수밖에 없는 데에는 이
런 구조적인 결함이 큰 역할을 한다. 도처에 널려 있는 게 “공돌이”인데, 어느
기업주가 비싼 돈 주고 엔지니어 데려 올까.

당장 대학에 가서 이공계 대학원생들 붙잡고 물어보라. 연구 활동에 가장 큰 장
애가 뭐냐? 아마 십중팔구는 ‘불안한 미래’라고 답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석사나 박사를 마치고 나서 이들이 어
디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 기업이나 산업
체 중심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들의 시각에서 문제를 들여다 봐야 한다. 이 사
람들이 학위 받고 나서 연구를 계속하든 취직해서 돈을 벌든, 어쨌든 갈 곳이 많
으면 이들의 몸값은 올라간다. 반대로, 지금처럼 오갈 데가 거의 없으면 이들의
몸값은 곤두박질친다. 즉, 정부에서는 이공계 출신들이 학위를 받고 나서 갈 수
있는 곳을 많이 만들어 주면 된다. 너네들이 알아서 직장 구하라고 하지 말고,
정부에서 인위적으로라도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이런 고급 인력들이 자기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학문이 발전한다.

정부에서는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대학과 기업을 연결시켜서 신기술을 계속 개발
해 내고 이것을 산업적으로 응용하여 좋은 제품 만들어 낼까에만 고민을 집중해
왔다. 최근 대통령의 화두라는 이른바 “클러스터”라는 것도 이런 기업중심적인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이는 당연한 것이, 그 단어가 삼성경제연구소
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을 대통령이 차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는 사실 죽도 밥도 안 된다. 기업 중심적인 산학협동의 결과로 얻은 신기
술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히려, 이는 대학의 자율성과 창조적 생명력을 좀먹는
다. 대학과 연구의 본질은 그 자유로움에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학 중심
에서, 지식 창조자의 관점에서, 학자들의 시각에서 이들이 자기 뜻을 마음껏 펼
칠 수 있는 마당을 충분히 만들어 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 결과를 이용해서 돈
벌려고 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수두룩하다. 기업들이 어떤
집단인가. 돈에 미쳐 돈 벌려고 환장한 곳이 바로 기업 아닌가. 정부가 그렇게
나서지 않아도 돈 벌고 싶은 사람은 대학 주변에 얼쩡거리게 마련이다. 아쉬우
면 자기들이 돈 줘서 “투자”도 하고 건물도 지어주고 인적교류도 하고 그럴 것
을 굳이 정부가 세금 빼 주고 부지 마련해 주고 하면서 멍석 다 깔아줄 이유가
도대체 뭔가.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관점을 180도 전환해서 대학과 학자들과 학생들을 중심에
놓고 정책을 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의 몸값을 정부가 높여줘야 한
다. 정부가 고급인력들을 싸구려로 전락시키는 정책을 펴지 않으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기능 있는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것에 대한 지불이 후하
지 않다. 이공계 기술자, 엔지니어 등등 뿐만 아니라, 컨설팅 회사의 자문을 받
는 것에 대한 비용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것도 좋은 예이다. 이런 풍토는 능력 있
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는 데에 큰 걸림돌이다 (물론, 투명한 조세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독일에서는 마이스터의 손끝만 거쳐도 비용이 천
정부지로 치솟는다, 대체로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에서는 사람의 손길과 능력
을 거치는 것에 매우 비싼 값을 매겨준다. 그래야 그런 전문가들이 많이 양산된
다. 우리 나라는 정반대다. 정부에서 이들을 비싸게 취급해 주면 기업체가 이들
을 홀대할 수 없다. 마치, 양곡수매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제 구체적인 제안을 좀 해 보자면, 정부에서 이공계생들의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마련해 줘야겠는데, 무엇보다 연구소 많이 짓고 대학에서 교수 자리
많이 늘리는 게 시급하다.

연구소 얘기부터 먼저 해 보자. 연구소 지어 달라고 하면 또 무슨 산업적 연계
이런 것부터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업이나 산업이나 돈벌이나 이런 거하
고 전혀 상관없는, 정말로 연구원들이 아무 생각없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그런 “순수” 연구소 많이 지어야 한다. 정부가 이런 방향으로 집중하면 특수한
산업적 목적의 연구소는 오히려 기업에서 앞다투어 지어줄 것이다.

일본의 동경대나 도호쿠 대학 같은 곳에는 학과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부속 연
구소가 딸린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컨대, 물성과학 연구소 같은 곳에 박사급 인
력이 백 명 이상 모여 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박사 학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것이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데, 예를 들자면 금속 A와 금속 B를 비율을
계속 바꿔가며 섞어서 그 합금의 강도, 광택, 전도도 등 기본적인 성질들을 계속
해서 조사해 나가는 그런 일들 한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엔 뭐 그런 일에 박사급 인력이 필요할까, 그런 단순한 일 하는 데
무슨 연구소까지 지어서 난리를 떨까 싶지만, 그렇게 해서 쌓인 데이터는 그 자
체가 중요한 학문적 성과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일단 그렇게 학문적 성과가
쌓이면 어떻게든 그것으로 돈을 만들거나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겨
나게 마련이다. 일본이 미국도 부러워하는 전투기 복합일체 성형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나, 미국 우주 왕복선에 일본에서 개발한 신소재들이 쓰이는 게 우연
이 아니다.

우리나라엔 이런 연구소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
었는데, 특히 인문학 관련 연구소 많이 세워야 한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되도
록 유도해야 한다. 퇴계 연구소 짓고, 율곡 연구소, 고려청자 연구소, 고구려 연
구소, 한글 연구소 (이미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재 복원 연구소, 등등등. 이
런 연구 기관들이 대학원 과정과 긴밀한 관련을 가지면서 오갈 데 없는 대학원
인력들을 흡수해야 한다. 이렇게 세워질 연구소들은 향후 우리 나라의 중요한 씽
크탱크의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대책없이 무작정 연구소만 지으
면 안 된다.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
다).

어떤 사람들은 또 돈타령이나 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가장 성공적인 기초과
학 연구기관은 고등과학원 (KIAS)이다. 고등과학원이 얼마나 훌륭한 성과들을 내
고 있는지는 이 바닥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논문편수나 인용횟수 등에서 정말
“세계적인” 연구소라 할 만하다. 이곳의 1년 예산이 겨우 100억 정도밖에 안 된
다. 물리, 수학, 화학 등 세 분야가 모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큰 돈이 아
니다. 법인세 1%면 이런 연구소 약 17개 운영할 수 있다. 기초과학이나 공학 계
열의 연구소는 설비비가 많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문학 계열의 연구소
는 거의 돈 들어갈 일이 없다. 건물 올리고 나서 월급이나 제때 주고 빵빵한 컴
퓨터 몇 대만 갖다 주면 사실 그걸로 족하다. 그게 몇 푼이나 되겠나. 1년에 1조
원씩만 인문학 연구소 육성에 붓는다고 하면 고등과학원 급의 연구소를 무려
100개나 굴릴 수 있다. 지금은 워낙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연구소 100개
지어도 연구원들이 없을 터이지만.

연구기관의 확충과 함께, 대학 교수들의 양적 팽창 또한 시급하다. 국민 1인당
교수 비율 따져보면 아마 미국이나 일본과 현격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물리학과
의 경우를 보자면, 서울대나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진이 서른 명 안팎이다. 그런
데, 제대로 물리학 하려면 적어도 배 이상의 교수진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판단이다. 모든 대학의 교수진이 배 이상 늘어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
컨대, 카이스트 같은 곳을 거점으로 지정해서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진을 한
100명 정도까지 (단계적으로) 늘린다면, 이런 대학이 전국에 한두 곳만 있어도
한국 물리학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다.

교수진을 대폭 늘리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다른 대학들
의 반발도 예상되고, 지금도 부족한 공간문제도 있고 특정 분야만 특혜를 줄 수
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교수진의 양적 팽창
을 주장하는 것은 이제는 기초 학문에서도 우리가 “규모의 경제학”을 실현할 때
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기초 과학이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전문가의 태
부족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로 인해 학계가 받는 고통은 의외로 크다.

각 분야별 전문가가 소수이면 학자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 한 학
자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평가는 바로 그 커뮤니티 내부의 평가이다. 외부의 사
람들은 사실 누가 어떻게 연구하고 논문 쓰고 세미나에서 무슨 질문들 하고 이
런 거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논문 편수는 허수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부에
서 연구비 지원할 때 정작 필요한 곳에 돈이 가지 못하는 수가 생긴다.

과중한 학과 업무 부담으로 인해 자기 연구에 몰두할 수 없는 것도 큰 문제다.
그리고, 뭔가 연구를 하려고 해도 주위에 같이 토론할 사람이 별로 없어서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교수진 100명에다가, 각 교수가 연구원 한 명씩만 데
리고 있어도 박사급 인력이 한 울타리에 200여 명 모여 있게 된다. 이 정도면 정
말 뭔가 해 볼만하다. 고급 인력이 모여 있다는 것은 바로 정보와 지식이 집중되
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보의 집중과 빠른 유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는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 새삼 강조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요컨대, 연구소를 많이 짓고 대학 교수를 양적으로 팽창시키고 하는 것들을 통
해 박사급 고급 인력들의 일자리를 확보해 주고 전반적인 “규모”를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욕심을 부린다면, 대규모 연구 단지 혹은 거대 프로젝트의
유치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돈이 천문학적으로 소요되는 일이라 우리 나라가 중
심이 되고 일본이나 미국, 중국 등을 끌어들여 해외자본 유치한다고 해도 국가
경제의 허리가 휠 수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거대 프로젝트는 그만큼
의 “값어치”는 충분히 해낸다.

일본의 고에너지 연구소 (KEK)를 예로 들면,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물리
학자와 엔지니어가 수천 명이다. 이 자체가 이미 규모의 “경제학”을 실현하고 있
는 셈이다. 특히, KEK 내부의 Belle 입자 검출기 그룹은 최근 입자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들을 연거푸 해 냄으로써 미국과 함께 이 분야의 양대 거점으
로 올라선 지 오래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이로 인한 일본이라는 국가 이미
지 개선은 말 그대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학자들은 중요한 결과가 나온 논
문을 읽으면서 항상 Belle Collaboration이라는 연구그룹 이름을 접하게 되고 수
많은 일본학자들의 이름과 일본 대학들과 일본 연구소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 “일본의 가속기”로 인식된다. 전세계의 수많은 고급 인
력들이 한달 단위로 아니, 일주일 단위로 이런 “국가 광고”를 접한다고 생각해
보라. Belle의 중요한 실험 결과 발표는 아사히 신문 1면을 장식할 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스 1면에도 실린다.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KEK 등지에서 입자물리 실험을 하고
있지만, 결국 남의 나라 가서 하는 실험이다 보니 제대로 된 성과가 하나도 안
남는다. 반면에, 일본은 이미 이 분야에서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기술력과 노하우
를 축적했다. 이번에 새로 승인된 JPARC 계획까지, 일본 열도에는 모두 네 개의
입자 가속기가 생겨나게 된다. 이런 나라 지구상에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성과가 한국에 고스란히 남는” 그런 프로젝트 벌여야 한다. 우
리 나라의 현재 수준은, 양양에서 벌이고 있는 암흑물질 탐색 연구에 고작 30억
쯤 들어간 정도다. 당장 우리도 가속기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느 분야든, “
국책사업”으로서의 거대 프로젝트도 이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는 얘기
다. 그로 인해, 기초학문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대형 연
구단지가 들어서면 그것이 파생시키는 고용효과가 엄청나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사무직이나 여타 제반 설비들, 인근 상권 형성 등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
가 생겨난다. 이렇게 되면 보통 사람들이나 사회의 기초 학문에 대한 인식이 바
뀌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자체가 매우 훌륭한 국가 이미지 광고 매체가
될 것이다.


6. 대한민국의 새로운 생존전략

군사정권의 개발 독재에 의한 노동집약적 수출로 우리가 먹고 사는 구조는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일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저임금에 바탕한 제조업으로 우리의 생존을 담보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도 사회
일각에서 낡은 구조에 기대어 먹고 살기를 바라는 기업이나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임 김대중 대통령이 높이 평가되어야 할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
가 IMF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앨빈 토플러 그룹을 불러다가 이른바 “국가 컨
설팅”을 의뢰한 것이다. 그 결론이 무엇이었던가. 기존의 경제 구조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정보화와 지식 기반 산업의 육성이
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으로 파격적이고 담대한 계획이었다. 심형래를 신지식인으
로 지정한 것도 자기 기술과 자기 능력이 있는 장인들의 가치를 최대한 존중하
여 그런 각 분야 전문가들을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공화국 수립 이
후 처음 있는 일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음
을 던진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초고속 통신망을 안방까지 까는 등 정보화의 인프라에 대한 개념은
있었을지언정, 인재 양성의 인프라에 눈 뜨지 못하고 신지식인 선정으로 그친 것
은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정부가 생각한 우리의 새로운 생존 전략은 고급 인력의 양성을 통한 고부
가가치 산업의 육성이다. 이 방향성은 매우 올바르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믿을
것은 결국 “사람”밖에 없지 않은가.

머지않아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동북아의 경제블럭이 형성될 가능성이 많은
데, 저임금에 바탕한 중국 제조업과, 높은 기술력과 탄탄한 기초에 기반한 일본
제조업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살아 남을 길은 고급인력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최근 한국 드라마와 영화 산업의 급성장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나는 단지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
다.)

영상매체 산업의 급성장과 일정한 성공은 우리에게 가능성과 함께 한계점도 동시
에 보여준다. 우리 나라의 문화적 잠재력과 산업화의 가능성에 밝은 빛을 보여
준 한편으로, 결국 우리가 극복해야 할 벽은 핵심적인 “컨텐츠”임을 새삼 확인하
게 된다. 이는 최근 흥행에 실패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패인을 분석해 보면 금
방 알 수 있다. 예컨대, 제작비 120억원이 들어간 원더풀 데이즈의 경우 시나리
오와 구성의 밋밋함이 가장 큰 패인으로 꼽힌다. 결국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말
인데, 이것이 바로 핵심 컨텐츠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핵심 컨텐츠는 어떻게 생겨날까?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다. 이들은 따로 교육되고 따로 성장한다. 우리 나라
애니메이션 수준이 그림 그리고 색칠하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면서도 여
태 죽을 쑤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 “스토리 작가”의 부족 (그리고 기획
역량의 부족)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인문학의 깊고 넓은 저변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느끼게 된다. 영
화나 애니메이션의 스토리 수준은 결국 그 사회의 인문학의 수준이다. 해리포터
나 반지의 제왕이 그냥 영국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뉴튼 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힘의 개념도 학자들에 의하면 이른바 헤르메티시즘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마술, 마법사, 고양이, 빗자루, 늑대인간 등의 코드
로 통하는 문화적 전통이다. 인문학이 발전해야 기초과학이 발전하고, 또 기초과
학의 발전이 인문학 발전을 돕는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지금 일본이 야심차게
내세우는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을
보고서 꿈을 키워 온 공학자들이다. 풍성한 인문학적 인프라, 지식기반이 전통적
인 굴뚝산업과 결합되면 그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제
조업과 지식기반 산업을 선택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에 반대한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흥행이 성공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상당수가 인터넷 소설과
관계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상산업의 핵심 컨텐츠인 “스토리”가 바로 인
터넷 상에서 태어난다는 점 말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높은 가능성과 기대감
을 주는 부분이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문화적 잠재력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이기
도 하다.

정부에서는 단지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아 주었을 뿐이다. 영화사를 중심으로 해
서 소설 쓰는 초보 작가들 연결시켜 준 것도 아니고 대학 국문학과와 충무로를
산학협동으로 연계한 적도 없다. 정부에서는 그저 능력 있는 작가들이 자기 생각
을 펼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최대한 확보해 주는 데에 주력하면 된다. 그것
이 돈벌이로 연결되는 것은 민간에서 다 알아서 하는 일들이다. 대신 정부는 합
리적이고 공평한 규칙과 질서만 부여하면 된다.

이공계 문제를 바라보는 것도 이와 같은 시각이어야 한다. 학자 개개인들, 공학
도 개개인들에게 간섭하는 형식으로는 이공계가 죽는다. 기업체 입장에서 이들
을 돈벌이 아이디어맨으로 치부하는 이상 이공계의 미래는 없다. 어떻게 하면 이
들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그 장을 만들어 줄 것인가, 이들이 기본적
인 최저 생계를 유지할 수는 있을까, 이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떤 사회 봉사
의 기회를 줄 것인가 등에 집중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고급인력들에게 후한 값을 쳐 줘야 그 성과물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기업들은 이런 고급 인력을 사용하는 댓가
를 비싸게 치룰 것이고 그만큼 다른 비용을 절감하면서 품질의 고급화를 꾀할
수 있다. 고급 인력의 육성과 지식 기반 산업- 이를 통해서만 대한민국이 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설 수 있고, 선진국 진입과 세계 중심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7. 맺음말 - “목숨 걸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

결론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공계의 위기는 대한민국 학문의 위기의 전면화
된 현상이기 때문에 그 처방 또한 국가의 존망과 결부시켜 마련되어야 한다. 한
강 물 깨끗하게 하려고 들어가는 돈이 연간 2~3조원이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
래를 기약하려면, 내 생각에 적어도 이만큼의 액수가 매년 기초학문 육성에 “버
려져야 한다.” 이 대책이 단발성 땜빵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짧게는 10년, 길게
는 100년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정말 국가적인 “국책사업”을 벌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고위 공무원들의 “인식과 마인드의 변화”이다.

맺기 전에, 입자 물리학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예를 하나 소개한다.

미국 시카고 근교에는 테바트론이라는 세계 최대의 입자 가속기가 있다. 그 기계
를 처음 만들 때, 의회 국방위원회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펜타곤이 여전히 돈줄
을 쥐고 있으니까...) 청문회를 했다. 그 청문회에 나온 물리학자가 윌슨이라는
사람인데, 입자 물리학에서 아주 큰 업적을 남긴 매우 유명한 과학자다. 국방위
원들이 물었다.
"그 가속기가 국토 방위와 무슨 상관이 있지요?"
그러자, 윌슨이 대답했다.
"이 가속기가 조국을 지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미군이 이 가속
기를 목숨 걸고 지키게 될 것입니다."

윌슨은 테바트론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목숨 걸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초대형 가속기를 운영하는 데에는 최첨단의 과
학기술이 모조리 동원된다. 그런 것들이 굳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이득을 가져다
주는지 계산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럽 입자 가속기의 과학자들이 인터넷을
처음 고안해 낸 것 또한 경제적으로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지 계산할 수도 있듯
이. 그러나, 그런 거대 가속기의 존재, 그리고 거기서 이루어 낸 과학적 발견들
은 도저히 돈으로 환산될 수 없다. 학문의 존재 의의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돈
몇 푼 더 벌어주는 가속기 때문에 미군이 목숨을 걸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 젊은
이들은 대한민국을 목숨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까. / 가이우스  
 

* Master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1-31 1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