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카르도(4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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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England)의 위치(Wych)에서 태어난 성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는 옥스퍼드를 비롯하여 파리(Paris)와 볼로냐(Bologna)에서 수학했고, 1235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사무국장이 되었으나, 당시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인 애빙던(Abingdon)의 성 에드문두스 리치(Edmundus Rich, 11월 16일)를 만나 그를 돕기 위해 즉시 사무국장의 직책을 사임하였다. 그 후 1240년 성 에드문두스 대주교가 프랑스의 퐁티니로 망명했을 때 그를 수행한 성 리카르두스는 에드문두스 성인이 사망한 후 오를레앙(Orleans)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은거하며 신학을 연구하고 서품을 받은 후 영국으로 돌아왔다. 1244년 성 리카르두스는 치체스터 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그의 업적은 교구의 완전한 개혁으로 교회 내의 친족 등용과 성직매매를 적극 반대하고 금지시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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